이경지(에세이스트) 남들이 하는 걸 다하고 싶은 욕구가 뼛속까지 있다. 욕구라고 해야 할지, 욕심이라고 해야 할지, 심보라고 해야 할지. 심드렁한 척하지만 콧구멍은 누구보다 크게 드릉드릉거린다. 그렇다고 막상 주변 사람이 하고 다니면, 하기 싫어진다. 이런 걸 홍대병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지. 괜히 서론만 길었다. 여하튼 패션이든 음식이든 문화든 모든 측에서 발생하는 코미디 같은 면모는 향에서도 마찬가지다.러쉬가 제주도에서 덜 유명했을 때였다. ‘도’칭 서울 냄새라며, 지하철에 가면 이 냄새가 난다고 한창 돌아다니던 브랜드. 아메카지 스타일에 비니를 쓴 수염 달린 스타일의 옷 가게 사장님이면 이 향수를 어김없이 뿌린다지? 이런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린다는 브랜드였다. 제주도가 심심했던 나는 간간이 서울로 제 집 가는 듯 가서, 이미 몇 년째 애용하고 있었다. 여기서 나만 사용하고 있다는 향이란 것과 앞서 말한 이미지를 부숴버리고 싶은 드릉드릉한 욕구. (이전부터 샤랄라 한 원피스를 입고 지프에서 내리는 나를 상상했다.) 그로 인해 형성되는 감각적인 디자인이 사람 자체의 캐릭터를 뽐내는 것 같아 더티를 뿌릴 때마다 항상 기분이 다채로웠다. 그러다가 길거리에서 한 번, 카페에서 한 번, 버스에서조차 그 향이 타인의 체취와 섞이자마자 더 이상 더티를 쓰지 않았다. 물론 같이 쓰던 보디로션도 동시에 끊었다.끊임없이 향 관련이라면 뭐든 코에 갖다 대고 어디서 맡아본 냄새라면 믿고 걸러냈다. 섬유 유연제 냄새를 제외한 나머지는 익숙한 향이었고, 제법 비슷하게 따라 한 자연 냄새에는 인공적 감미료 같아 칠색 팔색 하며 피했다. 드물게 만나는 기분 좋은 것들은 뒤에 붙는 공들이 많던가, 용량이 없던가 둘 중에 하나였다. 다행인 건 나름 취향 외골수 향 수집가로서 구매력을 향상하는 달이 올 때면, 이런 드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긴 한다. 안 그러면 두고두고 후회할 미래의 내가 아른거려서 미치겠으니. 정지된 빛, 고양된 공기, 흙과 뿌리. 광활한 대지에서 느껴지는 고양된 공기와 그 안의 정지된 빛, 탬버린즈의 시그니처 향 000은 자연의 순환을 의미하는 흙과 뿌리의 깊고 차분한 움직임을 떠올리게 합니다. 탬버린즈 브랜드는 여기저기서 하도 보여서 알래야 알 수밖에 없었다. 오프라인 매장이나 소셜 광고를 들어가면 보이는 광고에 질려 오히려 안 쓰려고 했었다. 애초에 핸드크림을 챙겨 바르는 편도 아니라 자주 씻는 손에 덧바르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하물며 비슷비슷한 디자인과 향기 브랜드가 여기저기 튀어나오면서 휘발되는 이미지나 개성에 맡아보기도 전에 질려 하는 편이다. 제주도에는 쇼룸도 따로 없으니 소비자가 직접 부르지 않는 이상 바다 건너 시향을 하는 수고로움을 선택해야 한다. 마치 한 달에 한 번 책을 구매하는 내 문학적 양심 같은 습관처럼 심심하면 부르는 샘플러의 소비 개성만 없었더라면 몰랐을 향이었겠다. '어떤 향을 진짜 좋아하는 건지?' 방향성을 잃을까 봐, 원래 쓰던 향수만 썼었더랬다. 시각적 자극에 약한 나는 끊임없이 어필되는 광고에 결국 수고로움을 선택했다. 샘플러의 효과는 미미했다. 한 번만 쓸 수 있으며, 따라서 향에 대한 기억도 한 번으로 증발해버렸다. 거기서 소비는 멈췄고 그저 선물하기 좋은 패키지라는 것 밖에 남지 않았다.서울에 타투를 받으러 갔다. 끝나고 갈 곳이 없어서 카페 -> 카페-> 카페에 물려 카페 건물 3층에 탬버린즈가 있길래 구경을 갔다. 향은 또 직접 맡아 보면 또 다르고, 매장마다 추구하는 게 쇼룸가면 보이니까 마음속으로 취향이 확고한 전문가인 척 굴었다. 그런 식으로 굴면 나름 날카롭게 고를 수 있게 된다. 다행히 몇 개의 베이스가 마음에 들었다. 룸 스프레이 둘 중에 고민 고민하다가 하나를 손에 쥐고, 손소독제 방향으로 갔다. 미끈거리는 핸드크림에 비해 향은 강하게 남고, 바로 증발해버리는 소독제의 촉감이 나를 흔들었다. 종류별로 세 가지가 있었지만 흔하디흔한 000만이 눈에 밟혔다. 결국 나도주변 사람들처럼 시그니처를 선택했다지. 러쉬의 시그니처 더티를 사용한 과거를 잊은 것처럼 탬버린즈의 000을 사용하는 게 마치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대표곡을 듣는 것보다 수록곡에 빠진 덕후의 마음을 알겠는가? 나는 그런 부류이기에 다른 종류의 향을 더 맡아보지만, 알면서도 함정에 빠지기로 했다. 센터는 괜히 센터가 아니지. 으쓱대면서 말이다. 여전히 가방 속엔 000이 있다. 잃어버려서 사려고 했는데, 선물로 받고 또 살 생각에 빠져있다. 좋아하는 향이 있다는 건 꽤나 기분 좋은 일이다. 향 하나로 하루 치 기분이 달라진다는 마술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니까.우선 나같은 경우에는 소독제를 꺼낸 후, 엄청 흔들어 재낀 다음 손 팔 목 모든 곳에 바른다. 강한 향. 휘발성. 중독성. 000의 향이 그 순간을 매혹적으로 만든다. 진정시키는 건지, 냄새를 없애는 건지, 향기를 만들어낸다든지. 어떤 사람에게는 어디서 맡아본 냄새일 테고, 이제는 유명해져서 "아~000!" 이럴 테지만, 흡연자 입장으로서는 비흡연자를 위한 배려로도 좋다. 담배 냄새를 가리기에 최적화된 에탄올 냄새+소독 기능까지 일석이조이기에 거부할 수 없음! 하물며 대용량을 사려고 부들대고 있으니, 할 말도 없음! 그렇기에 나는 000의 공을 자꾸 찾고 있다.계절도 계절이고 요즘 컨디션도 좋지 않다. 손도 많이 트고, 몸도 건조해져서 보디 크림과 에센셜 쪽에도 많은 관심이 가긴 하지만 향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애초에 눈길이 가지 않으니 새삼 화장품에도 향이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설정인지 깨닫는다. 뭐 한 번만 꽂히면 맹목적인 소비자가 되는 바라기는 '하나만 걸려라 부들부들'하면서 맡아보지만, 억지로 좋아하는 향을 사는 것도 싫어서 일부러 안산 적도 많다. 향은 기본적으로 '좋음'이 기본으로 깔려있으니까. 제일 중요한 건, 평상시 스타일, 이미지, 성향 통 틀어서 잘 맞느냐? 까지를 고려하면서 산다는 것... 이게 조용히 맡는다고 아무 생각없는 게 아니랍니다. 다 생각이 있고 상상중이라구요.곧 더티처럼 지나쳐가는 타인들이 같은 향이 난다면 다른 향을 좇아 방황자가 되겠지. 항상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 가짐. 이 상황에서 배우는 게 맞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만 뭐든 것에 진심이라면 이유가 무엇이 중요하겠어요. 그래도 좋아하는 건 언제나 오래가길 바라는 마음. 000. 곁에 있는 동안은 잘 부탁합니다. 모쪼록. 줄곧 제주도에서 태어나 육지를 바라면서 살다가도 결국 섬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이경지 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