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지(에세이스트) 왼쪽 팔에 있는 Tom Misch의 <Geography> 앨범 커버 내 몸에는 타투가 몇 개 있다. 의미가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다. 전체적으로는 좋아하는 것들로 새겼는데, 대부분은 취향으로 덮었다. 그중 하나는 Tom Misch의 <Geography> 앨범 디자인이다. 사운드 클라우드라는 음악 앱에서 처음 만난 톰 미쉬는 전율 그 자체였다. 수록곡 중 스트리밍이 많은 노래는 단연코 <Moive>. SNS에서 #감성 #무드라는 분위기가 한창일 때, 트렌디한 음악 스타일에 맞춰 그의 음악이 한국에서도 순식간에 수중 위로 올라왔다. 음악을 듣는다 하면 알던 사클에서 빼놓을 수 없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You're On My Mine>, <Water Baby>가 좋았지만, 1번 트랙부터 13번 트랙까지 틀어놔도 그냥 넘기는 법이 없었다. 나중에 인터뷰를 찾아보니 이 앨범을 만들 때, 여러모로 고통스러웠다며 오히려 방에서 자유롭게 만들었던 Beat Tape이나 친한 아티스트와 콜라보 음악에 애정이 가는 듯 보여 따로 찾아 듣긴 했다. <Valley>, <III Vibe>, <Moving Faster>, <Never Moved>, <Now>, <Dilla Love>,<Climbing>,<Summer>,<Try Agrin>,<Wind> ... 등 그가 뱉은 트랙에 또다시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단순히 반복되는 멜로디와 가사가 이렇게도 좋을 일인가? 선율 사이 들리는 목소리는 음악이 끝나도 둥둥 떠다닌다. 그야말로 여운. 시 한 편을 읽고 난 후, 아련한 마음이 남아 묘하게 그려지는 풍경 같다. 음악 편식이 심했던 학창 시절, 아이돌 팬덤 문화를 벗어나 The 1975를 만났다. 그 길로 외국 가수의 노래로 플레이리스트는 외골수 길을 걷고 있다. 리스트의 목록은 변해도 실상 변하지 않는 정석의 내 가수가 중요했다. 중요한 순간ㅡ 여행을 가거나, 운동을 하거나, 집중을 하거나, 분위기를 타고 싶을 때ㅡ에는 항상 떠올랐던 가수이고, 처음으로 음악적인 취향을 확고하게 말할 수 있게 해 준 아티스트. 그 정도로 한 번 빠지면 미친 듯이 듣는 나다. 그런 사람이 재즈라는 듣지도 않던 장르를 알고 싶어서 “real something new!” 를 외치며, 다른 멋진 게 있는지 온라인을 뒤졌다. 사 계절 내내 빠져살다가 CD에 콘서트에 머천다이즈에... 시간이 빌 때마다 유튜브 속 라이브 무대를 봤다. 그렇게 덕질이 시작됐다. 신기하게도 맨날 듣던 노래도 단지 라이브라는 이유로 새롭게 느껴진다. 이유가 뭐가 필요하겠어. 그들이 이유겠지. 난 참지 못하고, 한 시간 동안 몸을 움찔거리고는 매번 할 일을 뒤로 미루곤 했다. 이어폰을 귀에 달고 다니는 게 일상이라 The1975를 발견했을 때처럼, 톰 미쉬를 알았을 때 미친 듯이 기뻤다. '아 또다시 사랑에 빠진 걸까?' 95년생 동갑이라는 것에 부러움과 뭔지 모를 패배감도 느꼈지만 그가 만든 작업물에 대한 동경심이 모든 걸 눌러버렸다. "Real Good Shit!" Tom의 플레이리스트 제목이다. (그의 슬로건이기도 하다.) 그대로 옮겨 적어 그의 음악을 담고서는 질투고 뭐고 녹아내리는 마음 붙잡기에 바쁘다. 취향이 늘어간다. 폭이 넓어질수록 확실한 기쁨은 어디에도 없으니, 앉아서 이어폰만 꽂으면 된다. 세계는 이렇게 창조된다.이토록 내 가수에 집착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취향에 있어서 진심이라는 것. '나'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식이며 평상시, 건드릴 수 없던 구역의 누군가가 대신해 분출하는 일종의 아바타 역할을 톡톡히 해내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우상이 될 수도 어떤 이들에게는 오락이 될 수도 있으며, 또 다른 이들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 순간이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 같은 경우엔 듣는 말보다 더 많이 듣는 건 노래겠다. 저번에 썼던 <000>의 좋은 이유는 하루치 기분을 다르게 한다는 부분이다. 좋아하는 가수/노래가 생긴다는 것은 좋아하는 사람을 알아가는 것과 같은 느낌인 것 같다. 장르를 모르기에 익숙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고, 몸이 반응하기까지 적응 기간도 걸리고, 나중에는 멜로디만 들려도 머리가 먼저 반응한다. 이 모든 게 편견에서 비롯되는 게 아닌 무조건 좋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신선하다. 애초에 관심사라는 게 쉽게 생기지 않는데, 타고 타고 들어가는 게 다 좋을 것이라는 전제하에 시작하는 것이 얼마나 비 계산적인가.이토록 열광하기까지는 이들이 가진 자신감도 한몫한다. 잠깐 인터뷰를 보면 말하는 스타일이 확고하며, 음악이든 삶을 살아가는 방향성이든 추구하는 것이 뚜렷하다. 말하고자 하는 것을 거침없이 말한다. 어쩌면 내가 그러지 못한 사람이기에 광적인 집착을 더하는 것이겠다. 살아가면서 물음표가 따라오는 질문이 무작정 던져질 때도 있다. 그들도 사람이기에 실수를 하며, 현실적인 선택을 해야 할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실천하고 나아가고 있다. 가십거리에 보란 듯이 결과물을 내고 있다. 자신의 재능을 믿고 앞세워 증명해 내고 있다. 난 그런 재능이 없으니 그들의 상징물을 몸에 새기며 취향이라고 얼버무리며 만족하는 중이다. 검정 글자를 끄적이며 뿌듯해하는 중이다.한 친구가 물었다. "넌 참 부지런한 것 같아." 여러모로 덕질을 하거나 주기적으로 글도 쓰려면 부지런해 보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 들었다. 이 글로 인해 게을러서 한 물 파기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이란 게 밝혀진 것만 같아 요새는 사려볼까 하지만, 내 가수 자랑은 여기서 참지 못하고, 검은 자판을 두드리게 됐다. 뭐 어쩌겠는가. 이들에게 받고 있는, 짧지만 순간마다 완벽한 삼 분들을 ...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도 꼭 알려주고 싶은 욕심을 참을 수가 없다. 줄곧 제주도에서 태어나 육지를 바라면서 살다가도 결국 섬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글을 쓰고 있습니다.이경지 인스타그램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