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지(에세이스트) 잠 못 든 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기상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던 목 댕김이 목을 타고 머리끝까지 올라가는 느낌에 머리가 어질었다. 나약하게 넘어지는 건 싫었다. 대수롭지 않게 무표정을 짓고서는 한 단계를 넘겼다. 저녁 내내 울리는 머리통을 물줄기로 진정시키려 했다. 따뜻한 물줄기는 그런 열을 더 달아오르게 할 뿐이었다. 이런 감각이 낯설어서 조심스럽게 머리칼은 만졌다. 복잡했다. 머리칼 끝까지 아린 감각이 전달됐다. 현실이었구나. 잠깐 이상의 섬에서 떠난 줄 알았다. 떨어지는 물은 적당히 따뜻했다. 뜨겁지도 미지근하지도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 열이 오른 것 같다. 같은 패턴으로 시작해야 하는 아침에 조그마한 틈도 내어주고 싶지 않았다. 걸핏하면 크게 넘어질 날 알기에. 아무리 작아도 파동은 파동 아닌가. 일부러 밝은 옷도 입었다. 오늘 하늘과 똑같은 색의 가디건과 헐렁이고 통 큰 연한 색 청바지를 입고서 정신 차리자며 허리띠를 동여 매 밖으로 나갔다. 머리를 감아도 정리가 안된 듯, 전체가 눌린 듯한 기분이 아득했다. 눌린 건 마음인지, 정신인지, 정말 머리인지... 출근 전, 조금 일찍 나와 카페에서 샐러드와 커피를 마셨다. 건강하려면 일단 아침밥을 먹어야 하며, 없던 입맛을 돋우려고 했다. 좋아하는 영상을 보고 노래도 들으며 밥을 먹었다. 그래도 남은 시간에 <불안의 서>를 읽었다.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그런 행위 자체가 진정이 됐다. 책을 들고 글을 보고 다른 사람의 언어를 보며 무의식 속 불안을 떨쳐내려 했다. 이제 막 이 단계를 넘었다.통근버스를 타러 가야 하기에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무거운 가방에 어깨가 짓눌렸지만, 익숙한 듯 어깨가 굽어졌다. 생각이 없어지니 들려오는 말에 집중하게 됐다. 노랫말. 가수의 목소리를 들으며, 괜찮다는 위로를 해주는 듯한 떨림에 덩달아 괜찮아지길 바랐다. 떨리는 가사에 마스크 뒤 얼굴에는 진심만 남았다. 평소처럼 어느 기합이나 힘도 주지 않고 자연스러운 시선을 용납했다. 어디로 떨궈지는지 모를 정도로 감춰졌던 날, 아침 햇살 비추는 세계에 꺼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은 거였나? 버스를 탔다. 지정석 같은 앞자리에 앉고서 눈을 감고 무채색의 공기를 크게 들이 마셨다. 어릴 때부터 기댈 곳 없던 억울함이 투명한 창가에 비춰 보였다. 오른쪽 눈에는 어떤 각오가 왼쪽 눈에서는 어떤 포기가 보였다. 더 가만히. 가만히. 지나가는 나무들 사이로 선명히 보이는 얼굴을 보았다. 눈이 빨갛게 오른 채 눈물이 고여있었다. 고여있는 지도 몰랐다. 세상이 흐린 건 줄 알았지. 무력하게 보낸 아침이 생각난다. 시선 따윈 중요하지 않았던 루틴이었으니. 드디어 몸을 버스 의자에 기댔다. 기댄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책임감은 언제나 부담스럽다. 그러니 함부로 기대지 않았고, 기대려고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러니까 버스에서 몸을 기댄 순간 무너졌다. 한 쪽 눈이 풀렸다. 힘을 줘도 한 쪽 눈에는 생기가 돌아오지 않고, 열이 올라 빨개질 뿐이었다. 그렇게 힘을 주다 생각난 자기 폐쇄적 사고. 그때부터 눈에 힘을 줄 필요를 못 느꼈다. 그렇게도 열망했던 총기 있는 눈은 내가 가진 적이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한 쪽 눈이 죽은 건 아니었다. 그 길이 아니라고 막는 것 같다. 아직 죽지 않았으니, 반 쪽이라도 살아있는 것이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과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다. 그것이 포기하지 못할 이유였다. 두 눈이 동떨어진 채 얼굴에 안착했다. 그러한 이질감에 현재가 신기루같이 느껴진다. 평범하고도 시시한, 남들과 구별 없이 지나가고 있는 1분 1초가 어떤 사람의 망상, 꿈, 사라질 신기루라고 느껴진다. 진실로 꿈이 아니지만, 꿈의 주인에게는 꿈인 듯. 실제 하지만 실체가 없는. 두 개의 세상을 가진 얼굴이 빠르게 없어지고, 다시 생긴다. 의자에서 올라오는 열이 마치 이러한 모든 상황을 알아주는 것만 같아 아슬하게 매달린 결심을 창밖으로 보내버렸다. 나를 위로하고 있다. 이런 게 자기합리화라도 좋다. 동경하던 세상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무정함에, 포기하고 싶지 않을 이유에, 허상 같은 바람일지라도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고 풀린 눈이 말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오묘했다. 신기했지만 기묘했다. 올라오는 공포가 떨림이 되고 온몸에 쥐가 난 듯 저렸다. 이런 게 공포였던가? 예기치 못한 사실에 인식하고 있던 우울감이 해방할 때인가. 해방을 인식한 것인가. 줄곧 제주도에서 자라 육지를 바라보며 살다가도 아직 섬을 떠나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이경지 인스타그램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