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지(에세이스트) 어렸을 때, 흥미롭게 접했던 댄스 장르는 방송댄스였다.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친구들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 시절을 즐긴다는 의미와 같았다. 몸으로 교감한다는 게 이런 것일 것이다. 박자와 동작이 맞을수록 즐거움은 두 배가 됐다.춤이라는 건 단지 음악에 맞춰 몸이 움직이는 행동이었다. 깊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러다 남들 앞에서 추는 날이 오면 5분도 안되는 시간을 위해 몇 날 며칠을 연습해야 한다는 게, 허무하다고도 생각했다. 그럼에도 꾸준히 췄던 것 같다. 방구석에서든 밖에서든. 단순히 춤이 좋아서 추진 않았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소속감과 동시에 단 몇 분 만이라도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수 있는 순간. 그 정도의 욕심만 품고 있었다. 동적인 무언가가 아닌, 정지된 사물에서 느껴지는 입체감에 감탄하기 전까진 말이다.문학에 대한 강의를 들었을 때였다. 강사님이 보여준 Sylvie Guillem 실비 길렘 <Bolero>는 예술의 무지인 내가 봐도 하나의 작품을 보는 듯한 동작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똑같은 음이 반복되는 노래와 범주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동작의 연출감에 흥미를 느꼈다. 몸이 움직일 때마다 보이는 근육과 드러나는 뼈의 모양이 합쳐져 없는 가사를 만들어낸다. <Bolero>에서 느껴지는 등 체감이 하나의 서사가 진행되는 것 같았다. 난 언제나 춤을 가까이 뒀다. 동작이 익숙해지는 단계와 그럭저럭 잘 출 수 있던 실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을지도 모르겠다. 특히 아는 노래가 나왔을 땐 친구와 눈이 마주치고,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면 우리가 꽤 멋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물론 상상했던 그대로는 아니었지만, '나도 할 수 있네?’라는 이상한 위로를 받았었다. 하물며 책에서도 축제와 춤에 대한 단어에 꽂혔었다. 마티스의 <La Dance>는 서머싯 몸 <인간의 굴레에서> 표지를 보고 알게 됐다. 처음엔 책 내용 때문에 샀었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표지에 있는 그림에 빠져든 것 같다. 그렇다고 이 그림이 단순하게 둥그런 모양이었다면 애정이 갔을까? 표정 하나 없지만, 인물의 동작과 그림 속 구성으로 인해 정지된 움직임을 느꼈다. 정적인 사물에서 느껴지는 율동감? <La Dance>가 머리의 도끼를 찍은 것이다.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무의미의 축제>는 기억나는 부분이 <인간의 굴레에서>에서 느낀 것과 다른게 전체적인 내용과 상관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인상 깊었던 건, 한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이었다. 빛들 사이로 가라앉는 먼지, 깃털이 바람에 날려 떨어지는 형태. 여러 번 읽고, 여러 번 공상에 잠겼다.평소 생각이 많은 편이라 일순간 멈춤 상태에서 잦은 공상을 했었다. 이런 경험에 대해 누군가와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곧잘 감성적으로 변했기에 지극히 나에게 일어나는 부분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니 책에서 장면을 묘사하는 부분을 찾을 때마다 알이 깨졌던 것 같다. 외롭지 않다고 느꼈다. 스토리 상 비중이 크지 않아도 막무가내로 scene 안으로 들어갔다. 그날 이후, 작가들을 탐닉하며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그림을 그리고 여백에 모든 느낌표를 쏟아냈다. 글을 쓸 땐 손가락의 리듬이, 컨버스에는 펜과 붓의 속도를 맞췄다.실상 나는 현실도피 중이었을 수도 있다. 가상 속 세계에서 돌아오질 못할 답변만 기다리고 있다. 친구들과 가까워질수록 혼자 있는 시간은 많아졌다. 대화를 할 때 주제가 바뀌고, 내 의견이 남들과 엇나가기만 하는 것 같았다. 그때마다 느꼈던 감정을 모조리 뱉었다. 영상을 틀어 춤추는 사람의 근육을 보았고, 글 속의 축제를 찾았으며, 그림 속의 춤을 찾았다. 부가 설명 없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감성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수 있다는 새로움에 환호했다.그러니 내게 있어 '움직인다'라는 것 자체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조언자이자 조력자다.삶이 ‘불균형하다’고 느낄 때, 몸을 움직여 땀을 빼고 동작을 맞추며 음악을 듣고 하나의 영상을 만드는 것.자리가 ‘불공평하다’고 느낄 때, 의자에 앉아 흔들리는 작은 것들을 보며 진정을 찾는다는 것.자아가 ‘불안정하다’고 느낄 때, 정지된 춤을 보며 그간 쌓아논 경험을 새로운 이야기로 엮어내는 것.이렇게 짜 맞춘 것처럼 녹아있다는 건 놀랍지 않다. 오히려 힘든 감정이 진정된다는 게 놀랄 뿐이다.그러니 댄스 바람이 분 이 시점이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다.분명히 옛날부터 해왔던 방식이고, 하물며 즐기는 부분이다. 누군가 함께 하는 걸 기꺼이 응답하고, 풀었던 순간이었다. 아마 나도 빠르게 변화하는 흐름을 제때 타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질감이 든 것 같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런 현상을 즐기기로 했다. 전문 댄서도 아니면서 춤에 대해 진지한 꼴이 웃길 정도다. 그 정도로 해본 적도 없으면서. 그저 발을 떼고 박자를 맞추며 내가 원하는 곳에 힘을 조절하는 긴장감에 희열을 느낀다. 그러니 비관적인 생각보다 그 자체를 바라보려고 노력 중이다.한 번만 더 움직이면 될 것 같은 느낌, 몸을 어떻게 써야 동작이 멋있어지는지 그리고 노래와 춤으로 모든 사람들이 연결됐음을 느꼈을 땐, 이상하리만큼 아드레날린이 솟구쳤다. 처음 있었던 일 같이 새로이 느껴진달까. 아마 이런 변화는 다시금 사람들의 인생관에 녹아들 것이다. 마치 위로를 받으러 만들어낸 공상에 '무언가'를 좇았던 것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이. 줄곧 제주도에서 자라 육지를 바라보며 살다가도 아직 섬을 떠나지 못하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이경지 인스타그램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