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나무 함지박사거리점>, 잉글리쉬 머핀과 핫소스 글. 사진. 정태홍 늦잠을 자고 유튜브를 3시간 보다가 가까스로 밖에 나왔다. 일할 공간이 엎어지면 닿을 거리에 있다는 건 축복이다. 추석연휴가 시작됐음에도 가게가 붐볐다. 다른 주말보다는 덜했지만. <커피나무 함지박 사거리점>은 요즘 유행하는 인스타그램 감성의 카페와 다르다. 언제 어느 시간대에 와도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주말이면 교회 사람이 테이블 6개를 붙여놓고 오랫동안 있는다. 그러는 와중에 구석마다 공부하는 학생이, 작업하는 디자이너가 시끄러운 내색도 않고 이어폰도 없이 앉아 있다. 나는 소파 자리나 창문의 바 자리에 충전기를 꼽고 앉는다. 아메리카노와 샌드위치를 합쳐서 6천원 세트 같은 걸 하나 시켜놓고 몇 시간 있으려는 것이다. 여기는 게으름 때문에 생기는 죄책감을 덜어낼 수 있는 공간.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보지 않을 수 있는 공간. 남녀노소 동네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와중에 일을 하거나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 시끄러운 걸 백색 소음으로 여길 수만 있다면 여기는 첫 방문부터 당신의 방앗간이 될 수 있는 그런 공간이다. 조각케잌이라던지 스무디, 이 달의 메뉴도 굉장히 많고 자주 바뀌는데. 그런 메뉴들은 매장보다는 배달이 더 많이 나가는 것 같다. 서초구/동작구 카페를 통틀어 배달 2등 맛집이라고. 그래서인지 라이더들이 마실 물과 음료도 챙겨준다. 장발 사내의 매력이 이런 곳에서 드러난다. 바 자리에는 손님들을 위한 담요, 발 거치대를 놓아 두었다. 소변기에는 "바닥에 흘리지 마세요"라고 써있고. 피규어 상자에는 "절대 만지지 마시오"라고 써있다. 궁서체는 아니지만 지키지 않는다면 정말 화를 내실 것 같은 느낌이랄까 SNS에서 인기 있는 카페를 따라 사진만 예쁘게 찍는 카페들이 많다. 커피 한 잔에 7천원이 넘어가고. 물론 장사가 잘 되는 곳도 있지만 온라인 경쟁이 치열한 만큼 살아남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삶의 터전, 주인의 취향, 손님들의 성향. 온라인에 전시되고 싶다면 좋은 이미지를 위해 정해진 틀에 맞춰 이것들을 어느 정도 지워야 한다. 여기는 그렇지 않다. 왠지 사장님은 영화인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영화를 정말정말 좋아하시거나.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장님을 잠시 붙잡고 물어 보니 음악을 했었다고 한다. 마블 피규어들을 봐서 무조건 영화겠다 싶었는데 빗나갔다. 연예인들 싸인이 많아서 오해를 했는데. 손님으로 자주들 오신다고. 봉준호 감독은 와서 세네시간씩 작업하는데도 손님들이 봉준호인줄 모른다고 한다. 가게 사장님의 인터뷰(농담이다.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 늦잠을 잔 날이면 여기서 아침을 자주 먹는다. 크로크무슈나 잉글리쉬 머핀을 시키면 핫소스가 같이 나오는데, 핫소스를 뿌려 먹으면 더 맛있다는 걸 여기서 알았다. 아무리 뷰가 좋고 감성이 좋아도, 기분 따라 가게 닫고, 힘들면 청소 안하고. 그러면 나까지 기분 나빠지지 않을까? 여긴 꼭 의리가 있고, 약속을 잘 지키고 가끔은 섬세한 매력으로 감동하게 하는 슴슴하면서 오래 된 친구 같다. 힘들거나 슬프거나 우울한 날에도 가게를 연다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방문한 날 중 이 장발의 사내가 없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방배동에 살고, 성수와 신림을 오가며 일하고 있습니다.정태홍 인스타그램